Tact to Tact
2024.11.09-11.30
Artists : 김태희, 윤이도, 이정, 이미지
Location : 신촌문화발전소
Time : 화-일 10:00-18:00, 월 공휴일 휴관
Tue-Sun 10:00-18:00, Mon Holiday Closed
Curator : 김태희
Photo : 이미지
Graphic Design : 이정
신촌문화발전소 전시지원 공모 선정작
네 개의 공기 도미노*가 부딪히는 소리 : 택 투 택
본 전시는 4인의 작가가 할머니의 신체에 접촉(Tact)하여, 노인 세대를 둘러싼 논의를 연결(Tact)하고, 이를 관객과 공유(Tact)하려는 시도이다. 참여 작가는 신촌예술발전소로 향하는 경사진 언덕과 전시장 내 계단을 따라 이동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작업을 시작하였고, 각각의 작품은 노인의 신체적 한계를 은유한다. 이는 노인을 둘러싼 사회의 여러 문제를 드러냄과 동시에 민속 신앙, 역사적 사건, 세태 풍자 등으로 심화된다.
이정은 친할머니의 운동을 달력 <옥이의 홈 트레이닝>으로 기록하고 관객에 배포한다. 어르신들이 보기 좋게 글자가 큼지막하게 배치된 달력에는 이정의 할머니께서 평소 즐겨 하셨던 운동과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꽃이 가득하다. 작가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바닥에 앉거나 누워 운동하셨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이제는 작고하신 할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작가는 할머니의 움직임을 따라 해보았다고 말한다. 무릎을 탁탁 두드리거나 발목을 좌우로 움직이는 운동은 젊은이들이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할머니의 운동은 본인이 편찮으신 부분을 드러내는 지표로 작동한다. <옥이의 홈 트레이닝>은 여성의 사진이 관조의 대상으로, 성적 대상으로 등장하곤 했던 달력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달력은 대상화되었던 여성의 위치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보내지 못한 화환>은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기반한다. 작가는 자식들 사이에서 화환의 개수를 가지고 은근한 경쟁을 펼쳤던 상황을 떠올린다. 자식들의 인맥이나 사회적 위치에 따라 화환의 개수는 매우 상이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가는 먹먹한 무기력함을 경험한다. 시각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이 경쟁에 무쓸모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할머니를 기리며 할머니의 집을 떠올리게 하는 꽃무늬 벽지 위에 화려한 꽃을 배치해 화환을 제작한다. 화환에 등장하는 신체 이미지는 작가가 할머니의 운동을 따라 하며 촬영한 사진을 다시 그린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미술 하는 손녀를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종종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하셨다고 한다. 작가는 이번 기회로 할머니를 향한 오마주와 함께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정은 할머니의 움직임을 개인의 추억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움직임을 포착하여 세대와 세대를 잇는 조각배를 띄우고 있다.
김태희는 <노인 십계명>으로 안전바를 제작한다. 노인 십계명은 노년에 지켜야 할 일에 대해 노인들이 의견을 모아 만든 것이다. 작가는 친할머니께서 노인대학을 다니실 때 이 십계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노인 십계명의 인기는 노인대학뿐만이 아니었는데, 할머니께서 좋아하는 유명한 신부님의 강연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어떤 노인대학에서는 수업 시작 전에 이 십계명을 다 같이 소리내 읽는다고도 했다. 십계명의 내용은 노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날마다 샤워하라’, ‘날마다 속옷을 갈아입어라’는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체취로 주변 사람에게 불쾌감을 전달하지 않기 위해,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항목이었을 것이다. ‘뛰지 말라’, ‘많이 걸어라’ 등은 뼈가 약한 노인에게 적합한 신체 활동을 암시한다. ‘고집부리지 말라’, ‘시샘하지 말라’, ‘많이 듣고 조금만 말하라’와 같은 계명은 비단 노인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는다.
자조와 해학, 실천과 풍자 사이 그 어디쯤 위치한 이 <노인 십계명>은 어르신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작가는 어르신들이 이 계명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다리힘이 약한 어르신들의 낙상사고를 막기 위한 보조 용구 안전바를 떠올렸다. 그리고 안전바 위에 친할머니께서 친필로 작성한 노인 십계명을 금박으로 각인했다. 실제 어르신들이 사용하기 적합한 높이로 설치했으며, 관객은 전시장에서 안전바를 잡고 노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동해 볼 수 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에서는 노인의 신체적 어려움을 체험할 수 있는 ‘노인생애체험’을 진행한 뒤 각자의 노인 십계명을 적어볼 예정이다. 이로써 현시대 노인의 위치를 발화하고, 곧 우리의 미래가 될 노년의 모습을 다 함께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고자 한다.
윤이도는 종로구 신영동 부군당의 부군할머니를 기록한다. 신영동부군당은 마을을 수호하는 부군할머니를 모시는 곳으로 마을 통장에 의해 관리되어 왔으나, 이분이 작고하신 뒤로는 줄곧 방치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군당 바로 옆자리에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부군당 곳곳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건축주가 부군당이 자신의 토지를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부터이다. 부군당의 담장은 허물어지고, 건물 뒤쪽의 석축이 무너졌으며, 토지 경계를 넘어간 부군당 서낭나무의 나뭇가지는 볼품없이 잘렸다. 부군당은 『동명연혁고』(1997), 『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자료조사 종합 보고서』(2005)에 기록되어 문화재로써 보존 가치가 있고, 토지대장에도 사적지로 기록되어 문화재청 소유로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곳이 관할 부지는 맞지만, 건축물대장이 없는 미등록 건물로 문화재청 소유가 아니며, 비지정 문화재로 적극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때는 마을을 수호했던 부군당은 재개발이 주는 경제적 가치 아래 골칫덩이로 전락해 버렸다. 지역 재개발의 여파로 부군당을 기억하는 주민들마저 점점 사라지는 시점에서, 윤이도는 이곳을 ‘흐릿하게 남은 사랑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작가는 부군할머니가 돌보았던 마을을 안방으로 은유하여 노란 장판을 사용하였다. 장판 위에는 부군당 내부에 모셔진 삼불제석, 칠성, 산신, 장군의 이미지가 새겨진다.* 나무판에는 부군당의 스위치를 켜는 모습, 축문을 태우는 이미지, 부군당의 서낭나무, 그리고 부군당과 긴밀하게 연관되었던 절 장의사(莊義寺)의 당간지주가 담겼다. <흐릿하게 남은 사랑이기에>는 전체적으로 노인의 얼굴에 난 검버섯과 축 처진 주름을 연상시킨다. 윤이도가 기록한 부군당의 이야기는 너무 낡아서, 혹은 지금 보기에 촌스러워서 교체되는 노란 장판처럼 금세 사라지게 될까? 관객은 윤이도의 장판 판화와 나무 판화에 종이를 대고 색연필을 칠해 원하는 이미지를 떠 갈 수 있다. 적어도 전시에 온 관객과 함께 부군당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어 기억하길 바란다.
이미지는 일본 위안부로 성 노역을 했던 배봉기 어르신을 중심으로 작업을 전개해 왔다. 이를 통해 비극적인 역사와 가부장적 구조가 세대를 거쳐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구분 짓는 논리를 비판적으로 고찰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배봉기 할머니의 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목도한 주변부의 이야기와 그것으로 촉발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전시장 초입에 배치된 세 쌍의 원형 렌티큘러 작업은 한 여성의 허리춤에서 발로, 천천히 포커스를 이동한다. 이 여성은 위안소에서 정산을 담당했고, 일본군 장교의 애인이었으며, 전쟁 이후 한국인 남성들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깝게, 혹은 멀게도 느껴지는 이 인물은 시대상을 의미하는 가느다란 실에 얽혀있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문이 없는 벽 너머로, 고향을 가리키는 손>은 배봉기 어르신이 증언하며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은 사진과 위안소의 나무 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교차한 것이다. 작가는 연구 과정에서 성병에 걸렸을 때 주사로 투여된 독한 치료제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조개와 주사기가 교차하는 <부유하는 입>에 담았다. <헤노코와 동두천>은 오키나와의 헤노코에 위치한 미군기지 근처 바(Bar)의 사진과 동두천 기지촌 인근 피자집의 사진을 한 자리에 놓아 면면히 이어져 오는 성 노역을 기록하고 있다.
작가는 계단 사이 설치한 커다란 무명천에 배봉기 어르신의 유품에 그려진 꽃을 가득히 심어두었다. 그 옆에는 작가가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로 가기 위해 승선했던 배의 갑판 이미지가 배치되어 있다. 배의 갑판은 전쟁 당시 군인들을 태웠던, 혹은 배봉기 어르신이 탔을지 모를 그때의 수송선을 상징한다. 3채널 영상 <그리고 그 후에 남은 것>은 횡축(橫軸)에 배봉기 어르신이 취업 사기로, 오키나와로 이동했던 경로와 전후 이동했던 경로를 따라가며 발견한 제국주의의 부산물 등 전쟁의 흔적을 기록하고, 이를 관통하며 걸어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이 여성은 일생동안 여러 번의 이주를 겪었던 배봉기 어르신, 위안소에 있었던 젊은 여성들, 종전 후 치마를 팔며 고향으로 돌아온 위안부 여성을 은유한다. 작가는 인물을 특정하는 단서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사건들이 우리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우리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사건들이 있다. 혹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도달할 미래가 있다. 운동이라 보기 어려운 간단한 움직임도, 언젠가 맞이할 노년도, 이제 누구도 찾지 않는 신도, 끝난 줄로만 알았던 전쟁도. 우리는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도미노처럼 서 있을 뿐이다. 그래도 어쩌면, 도미노의 행렬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방향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순서대로 늘어선 도미노 하나를 집어 들고, 네 개의 공기 도미노 사이에 끼워 넣어 보자.
글. 김태희
*최영건의 소설 『공기 도미노』, 민음사, 2017의 제목을 차용한 것임을 밝힌다.
* 정혜경, 「서울 부군당에 봉안된 무신도 현황과 특징」, 무형유산학 제 3권 1호, p.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