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묶음 : 타로 이티티 아아 모이에하 에파아 리하하 도서관 개관전

Temporary Binding : Taro ititi aa moieha ephaa lihaha Library Grand Opening

2025.03.22-04.08

Curator : 김태희 Kim Tae-Hee

Artists :  감정 도서관장 : @becoming_sunny

                    경험의 도서관장 : @yejimaryhong

                    덧조각 도서관장 : @draw.me.jane

                    씹는 도서관장 : @sketch_me_n_u

                   그림 도서관장 : @chandammmm

                   허물 도서관장 : @wall_yo

Location : 수건과 화환 Wreath and Towel

TIME : 화-일 13:00-17:30  Mon-Sun 13:00-17:30

Organized by : 출판사 아름다움 @areumdaumbooks

In Collaborative with : 수건과 화환 Wreath and Towel

Design : 찬다프레스 @chanda.press

Photo : 최철림 @photo_chul_lim

안녕하세요.

타로 이티티 아아 모이에하 에파아 리하하* 도서관 개관전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타로 이티티 아아 모이에하 에파아 리하하 도서관은 김선희, 김은정, 김태희, 최예림, 최영건, 홍예지 6인이 창립하였습니다.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수건과 화환은, 텍스트가 쏟아져 내리는 폭포와 같아 도서관을 개관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물은 생명의 시작입니다. 저희는 이를 양분으로 타로 이티티 아아 모이에하 에파아 리하하 도서관을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창립 멤버 6인은 각자의 질문과 기준에 따라 감정 도서관, 이미지 도서관, 허물 도서관, 씹는 도서관, 덧조각 도서관, 경험의 도서관을 구축했습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도서관·책의 개념과 형식을 전시의 형태로 실험하고자 합니다.

타로 이티티 아아 모이에하 에파아 리하하 도서관은 책을 정보의 묶음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저희에게 책은 사유의 흔적이 물질에잠시 머무는 상태입니다. 도서관 역시 책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도서관은 질문에 응답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토론하는 장소입니다. 정리하자면 책은 사유 체계가 진동하는 상태이고, 도서관은 사유를 발화하는 행위이지요. 이러한 입장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1866-1929)의 므네모시네 아틀라스(Mnemosyne Atlas, 1927-1929)**처럼 잠시-고정된 상태를 전제합니다. 나아가 여섯 개의 도서관은 언제든지 다른 사유와 맞닿을 수 있고, 책을 읽는 이와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이는 미술사적 맥락에서 할 포스터(Hal Foster, 1955-)가 언급한 아카이빙 충동(Arkiving Impulse)***을 책, 도서관을 경유하여 전시의 형식으로 실험하려는 시도로 연결됩니다. 도서관에 방문하셔서, 위키피디아와 도서관, 아카이빙과 큐레이팅 사이를 오가는 궤적에 동참해주시기를 조심스레 요청하는 바입니다.

김선희의 감정 도서관은 상반되는 충동 사이 피어나는 감정을 기록하고 수집합니다.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말까고민하다, 자기 검열에 입을 열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입에 음소거 버튼이 눌린 듯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날. 어떤 날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노란 프리지아처럼 발랄하게 재잘대던 적도 있지요. 사회적 규범과 관계, 그것과 충돌하는 원초적인 욕망. 움직이는 것, 움직이지 않는 것. 그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 망막에 맺힌 점이 색을 입고 상승하다, 뚝 떨어지기도 하고, 소강상태에 머물다분출하곤 합니다. 평소 주변 풍경을 담아왔던 김선희의 드로잉이, 형태를 잃고 색과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수렴의 지점에서 다시 감정들이 꾸불꾸불 퍼져 나오고, 질서 정연하게 줄서기도 했다가, 어디론가 떠나버리네요. 여러분도 이런 순간이 떠오른다면, 감정도서관에 비치된 재료로 장서를 등록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은정이 운영하는 이미지 도서관의 정식 명칭은 이름 없는 그림 도서관입니다. 예컨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 구상 단계의 드로잉이나, 쓸모가 명확하지 않아서 이름을 붙이기에 낯간지러운 것들이지요. 하지만 이름 없는 그림들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깊은 연못과도 같습니다. 연못 가장자리를 따라 이름없는 조각이 자라나고 있네요. 그 옆에는 이름 없는 그림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장갑을 끼고 자리에 앉아 그림이 어우러지게 배치해 보세요. 그림이 십자말 풀이의 조각인 것처럼요.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보고, 단서를 찾아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그림은 커다란 그림의 일부일까요, 아니면 그것의 축소판일까요? 이미지와 언어 중 무엇이 우선할까요? 도서관장이 낸 퀴즈를 풀다 보면 그림과 그림, 그림과 글, 드로잉과 회화 사이 생략된 것을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림 속에 유영하는 흰 점, 중첩된 붓질 어딘가 에서요.

김태희의 허물 도서관은 말 그대로, 누구라도 허물없이 허물을 벗어 보관하거나 책의 허물을 가져가는 곳입니다. 도서관장은 책이 자꾸 허물을 벗는다고 말합니다. 읽는 이의 환경이나 관점에 따라 같은 글도 다르게 보인다나요. 그렇기에 허물 도서관의 책은 수명이설정됩니다. 수명은 책의 재료로 정해지지요. 어떤 이는 비누에, 전쟁에 관련된 글을 적었어요. 읽을 때마다 문질러 없애고 싶다는 의도라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책은 도서관장의 소설 <투명한 사구>입니다. 휴대가 용이한 소라 형태의 문고판과 허물의 성격을 강조한 확장판을 선보입니다. 좌우가 반전된 이름도 보이실 거에요. <박재기>, <김지민>인데요. 길거리를 지나다 마르지 않은 시멘트 위에 새긴 이름을 수집한 것이라고 합니다. 책을 대출하면 비로소 글자가 반듯이 보이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허물 도서관에서는 복제를 통해 대출이 가능합니다. 실리콘, 왁스, 석고……. 원하는 재질을 선택해 캐스팅(Casting)해 가세요. 허물을 떠내면 온전한 글자 책이 만들어집니다.

최예림의 씹는 도서관은 저희 도서관에서 내려오는 유명한 시 한 구절을 상기합니다. “책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책을 진정 씹고 뜯고 맛본 적이 있느냐.” 최예림은 이를 실천하고자 윤동주의 <서시>, <지화상> 한 구절을 읊조립니다. 그리고 그 소리의 파형을손으로 따라 그렸습니다. 141장의 이미지. 한 장 한 장 별 차이 없는 듯해 보여도 저들끼리 모여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이지난한 행위는 최예림이 시구를 곱씹고 내면화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여러 번 입에서 되새김해 보면, 시구의 맛과 식감이 드러납니다. 부드럽게 끈적이는<2.Gooey>, 바삭한<7.Crispy>, 달라붙는<8.Sticky>. 여러분도 시구를 씹어보실 수 있습니다. <10.Fine> 구멍에 귀 기울여 시구를 맛보세요. 어떤 맛이 보이시나요? 책을 여러 권 맛볼 수록, 씹고 난 흔적도 늘어갑니다. 손으로 뱉어낸 <단어들>. 책에서 흘러나와 넘실댑니다. 올망졸망한 단어들을 이어 붙여 문장을 만들어보세요. 문장을 완성한 사람은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답니다.

덧조각 도서관장 최영건은 덧조각을 도서관의 거울이 되도록 걸어두었습니다. 그 거울에는 현재의 모습만이 아니라 과거, 심지어는미래까지도 비치지요. 이 거울 책을 만든 덧조각의 첫 재료는 도서관장 최영건의 출간된 책과 출간을 기다리는 책, 어쩌면 영영 그 거울에만 남겨질 기억이라고 합니다. 거울의 크기는 도서관장 최영건의 키와 동일한 164x164cm이라지요.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실은 이 도서관장의 일부라고 하더군요. 소유가 아닌, 일부라고 말입니다. 이 소문의 진실은 역시나 거울 속에 있겠지요. 아무튼 이 거울의 진정한 힘은 자기를 만든 재료를 넘어, 자기를 찾아오는 이들의 모습을 계속 반영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 거울은 덧조각 거울, 계속해서 새로운 빛을 발하는 ‘Redeeming’의 거울이지요. 거울을 찾아온 이들은 거울에 비진 자기 모습을 발견합니다. 덧조각 도서관에는 그 모습을 따라 펼쳐지는 덧조각의 책들이 마련되어 있고요. 거울에 비친 단서들이 보이시나요? 모든 이의 모습을 따라 달라질 덧조각의 책입니다.

홍예지의 경험의 도서관은 원하는 자에게 열리는 오아시스입니다. 이번 개관전을 위해 하얀 정원에 경험의 도서관으로 향하는 문을만들었는데요. 경험의 도서관에 입장하면, 도서관장이 지혜를 찾는 자에게 꼭 맞는 책을 들고 나타나 당신에게 필요한 구절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도서관장이 여러 책을 체화할수록, 인생 경험이 쌓일수록 도서관은 성장해 나갑니다. 경험의 도서관은 경험을 어떻게 아카이빙하고 공유할 수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미술 비평가로 오래 활동해 왔던 도서관장은 개관전을 위해 특별히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타로 상담을 마련했는데요. 도서관장은 상담 내용을 익명으로 도서관에 기록합니다. 고민을 털어놓고 공유했던 경험은 도서관에 축적되어, 비슷한 문제로 헤메는 이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어 지도 모릅니다. 아쉽게도 방금 타로 상담이 매진이라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빨간 네모에 삼각형이 그려진 온라인 플랫폼에서 경험의 도서관을 검색해, 주문 ‘좋댓구알’을 외쳐보시길 바랍니다. 찾는 자에게 길이 있나니.

여섯 명의 창립 멤버는 아름다움 들판에 가꿔진 하얀 정원에 둥글게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예술에 대해서, 책에 대해서, 예술 출판에 대해서. 주고받은 말이 흩날려 씨앗이 되었고, 정원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도서관의 기둥으로 쓰일 만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개관전이 끝나면 저희는 이 나무로 배를 만들고, 지금까지의 논의를 책의 형식으로 실험하는 여정을 떠나려고 합니다. 방문해 주신 분들을 위해 여정의 시작이 되었던 책 네 권을 하얀 정원에 배치하였습니다. 도서관에 오셔서 찬찬히 읽어보세요. 여러분의 타로 이티티 아아 모이에하 에파아 리하하 도서관의 탄생을 기원하며.

김태희, 김선희, 김은정, 최예림, 최영건, 홍예지 배상.

*타로 이티티 아아 모이에하 에파아 리하하(Taro ititi aa moieha ephaa lihaha)는 뭐?(What?)로 번역된다. George S. Chappell, Walter E.Traprock, 「The Cruise of the KAWA-Wanderings in the South Seas」, 1921.

**총 63개의 패널에는 약 1000장 가량의 광고 이미지, 삽화, 예술작품, 지도 등이 언제든지 새롭게 배열될 수 있는 상태로 잠시-고정되어 있었다. 자료의 임시적인 위상은 무작위나 불규칙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사유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 할 포스터는 「아카이빙 충동」(2004)에서 1)유실되거나 망각된 역사적 정보를 현실화하는 방식 2)박물관이나 미술관 체계에 포섭되지않는 생성되고 있는 기록 3)관객 체험을 통해 공적 담론을 생산하기를 그 특징으로 들었다. 이외 아카이브 관련 논의는 다음과 같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아카이브 열병 : 프로이트의 흔적」(1995)에서, 아카이브의 어원이 시작과 명령임을 상기하며 양립불가한 속성을 결합하는 욕망을 아카이브 열병이라고 서술했다.